나는 군인 보면 미치겠다.

녹사평에서 삼각지로 이어지는 이태원로 한 조각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은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길이다. 길 양쪽을 높다란 플래타나스와 붉은 벽돌담, 녹슨 철조망이 막아섰다. 왼쪽 오른쪽 둘 다 미8군 부대다. 심지어는 중간에 구름다리로 양쪽이 이어진 곳도 있다. 내가 아메리칸 쏠저였으면 일부러라도 그 구름다리를 많이 오갔을 것이다.

나 자신께 죄송스럽게도, 아직 길 가는 병사만 봐도 마음이 찡하다. 근무 중인 헌병이랑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주 미쳐버리겠다. 전쟁기념관에서 참전국 평화음악회인지를 공연 전 연습하는데 지나가다가 <빨간 마후라>가 나오니까 왈칵 할 뻔 했다. 이런 건 내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관계없이 진한 경험에 의해 몸에 삼겹살 냄새처럼 깊이 배여든 자동 반응이다. 이처럼 자동으로 ‘느끼는’ 것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나도 모두도. 군인을 보며 나인 것 같아서, 내 상관이나 후임인 것 같아서 이입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만둬야한다. 감정이입은 시간으로 희석하고 객관화로 거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아무에게나 저 마음 이해해 하다가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빳빳한 생각의 틀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와 베이글에 파 썰어넣은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면서 감정이입을 두고 말이 달랐다. 체벌과 학생인권조례 얘기, 나아가 민족성으로서의 한국식 <내 아들같아서, 우리 딸내미같아서>의 오지랖에 대한 얘기였다. 엄마는 그런 부모마음 스승마음에 과하게 몰입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엄마는 교사로서 또 어머니로서 누가 봐도 그 반대쪽에 가까운 사람임에도. 그리고 그런 잘못을 없애기 위해 그런 본심이 나쁜 것으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아쉽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 잘 되라고’라는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을 마음이 좋다며 좋은 교사 좋은 부모로 해 둘 수는 없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 아무리 생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본능의 영역으로 보인다 해도 현실이 바뀌면 못 바뀔 것도 없다. 감정의 영역에서 철수도 맞고 영희도 맞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철수와 영희가 연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감대는 꺼 둬야 한다. (철수란 이름을 본래의 느낌으로 다시 쓰려면 참 오래 걸릴 것 같다)

브라우니 차렷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듯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 중인 국가가 맞다. 그건 그 때의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때문이 아닌가 한다.

  1. Y

    제대한지 얼마됐다고 민간인 다된척을 ㅋㅋㅋㅋㅋㅋㅋㅋ

  2. 김괜저

    아 군인… 불쌍해

  3. 681

    낄낄 요놈들…

  4. 681

    궁금한게있는데
    혹시 사진속에 보이는 모습처럼 너의 눈에도 세상이 저렇게 보이냐
    너의 사진은 너의 시각을 잘 재현한건가 아니면 초월재현한걸까

    너의 사진속 서울은 너무 살만한 도시처럼 나와
    평소에 저렇게 세상을 보고있다면 신나겠다 싶어서 좀 부럽다

  5. Y

    다 보정임여 ㅋㅋㅋ

  6. 김괜저

    누가 그걸 모를까

  7. 매화향기

    인생이란 그저 그런거죠. 괜스레 눈에 이슬이 생기기도 하고 괜스레 아름다움도 추함도 모두 내마음일 뿐이라는 것에 훌쩍 넘어가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