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우쪽파차지키꼬마버거 및 한우등심모짜렐라꼬마버거를 만들었다.

쪽파를 한 단 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쪽파 썰면서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희고 푸르고 단단하고 살랑살랑한 다양한 파조각이 수북한 모습은 보기 좋다. 다른 것 없이 새우살에 쪽파를 정말 많이 넣어 푸르딩딩하게 섞었다. 새우를 좀 썰어 넣었어도 좋았겠지만 그렇게 탱글탱글한 새우도 아니어서 그냥 마구잡이로 갈았다. 마늘과 후추와 건새우 가루를 약간 넣고 소금 간을 조금 세게 했다. 뭉쳐서 냉장고에 한 시간쯤 두었다. 더 세게 여지없이 뭉쳤어야 했다. 부서질락 위태위태한 채로 굽게 됐다.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주워먹으며 요리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원래 계란물에 빵가루를 뭉쳐 튀기려고 빵까지 갈아놨는데 잊어버렸다. 하는 게 나았을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선다.

타르타르 소스 말고 뭘로 덮을까를 생각하다가 요거트가 있는 것이 떠올라서 차지키를 만들었다. 오이와 마늘과 레몬즙을 넣었다. 흥건한 요거트에서 물기를 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제대로 된 차지키만큼 단단해지지는 않았다. 결국 마요네즈도 넣어버렸다. 근본 없는 차지키 소스로. 레몬은 초정탄산수에 갈아넣고 짜넣고 던져넣어 레모네이드로 만들어 놓았다.

무척 좋은 고기지만 냉동실에 박힌 지 워낙 오래라 갈아 햄버거 만드는 데 큰 갈등은 없었다. 이 고기 처치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고기를 섞지도 않았고 소금 후추에 파미지아노 레지아노만 좀 갈아 넣었다. 기름기 거의 없는 팬에 표면을 바짝 굽다가 밥공기로 넢어놨다. East VillagePaul’s Burger Joint에서 먹어보니 그렇게 구운 게 내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구울 때 덮으려고 저렴한 고다 치즈를 사 놨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더 저렴한 낱장 모짜렐라를 얹었다. 고다인지 모짜렐라인지 별로 구분이 안 가는 공산품 치즈이므로 큰 차이는 없었다. 양파를 버터에 구워서 양상추와 토마토에 깔았다. 모닝빵도 버터에 살짝 구웠다.

진짜 더럽게 맛있었다. 내가 만들어 먹은 것 중 뭐 제일 맛있었다. 둘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게 비슷하게 완벽하게 맛있었다. 실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이렇게 맛있다니 조금 허망하기도 하다. 부모님도 맛있다고 울면서 드셨다. 네가 정말 착한 아들이구나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다니…….

  1. 베리

    오 저도 해먹고싶은데 ㅎㅎ더 자세한 레시피없나요?

  2. 김괜저

    레시피를 보고 하지도 않았고 제가 재면서 한것도 아니라 없네요ㅜ

  3. ROSE

    더럽게 맛있는거 먹기에 동참하고 싶다.

    더럽게 맛있다고 눈물흘려 줄 수 있는데

    어찌 저런 요리를 만드는가? 파 썰린거 보고 후덜덜

    쉡프

  4. 김괜저

    파 잘 못썰어…

  5. tropos

    와. 쪽파와 새우의 조합에서 이미 무릎을 꿇었슴미다.
    마요네즈 차지키소스? 초정탄산수 레모네이드?? 구운양파???
    내공이 상당하십니다ㅎㅎ

  6. 김괜저

    저도 쪽파와 새우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ㅎㅎ
    내공이라기보다 주워들은 걸 사용합니다.

  7. 아비달짐

    ㅋㅋㅋㅋ 님 너무 재미있으세요! 저도 부모님이 울면서 드실 음식 해봐야겠네요.

  8. 김괜저

    부모님 울리는 법은 다양하지요

  9. ko-un

    저도 아직 부모님은 못 울려봤는데… 도전하기 겁나네요 ㅋㅋㅋㅋ

  10. 김괜저

    살면서 한번쯤은 부모님 눈에 눈물나게…

  11. 제이 정

    ㅋㅋㅋㅋㅋ완전 뿜었엉 형 요리 블로그만 따로하나해도 재밌겠다

  12. 김괜저

    뉴욕가서 하나 할까?

  13. gene

    부모님 울릴까봐 못하겠어요 ㅠㅠ

  14. 김괜저

    ㅠㅠ죄송해요

  15. Y

    아빠는 눈물이 안나는 사람인데 이걸 먹으니까 눈물이 다 나네?

    우리 드디어 사각탁구 개발해서 하고 있음 개재밌다 ㅋㅋㅋㅋ

  16. 김괜저

    햄버거 반은 아빠 먹으라고 드렸어

  17. 마말

    비슷한 맥락에서 램지의 게살 감자 http://www.youtube.com/watch?v=0cAFkYm3u1Q 향채는 넣지 않아도 무방함

  18. 김괜저

    Crab cake과 비슷한

  19.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20.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