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딱히 말년이라 드는 생각은 아니다.

판교에 위치한 아버지 회사는 아주 어렸을 때 이후 처음이다. 그런 게 대부분 그렇듯 기억에서보다 많이 작았다. 본사 건물 옆 축구장에서는 그 위에서 뭘 하는지보다 잔듸가 얼마나 새파란지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그 때 기분이 딱 기억났다. 주요인사로 보이는 분들이 잔뜩 중앙계단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을 맞닥뜨렸는데 하마터면 큰 소리로 경례를 붙일 뻔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군인으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들을 유용하게 써 먹어야 하는 환경에서 너무 오래 지낼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예비역 병장 무가식을 서현에서 만나 카츠동 종류를 먹었는데 이 친구뿐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 모두가 학교에서 지낸 것의 갑절이 되는 시간을 밖에서 알고 보냈다는 사실이 굉장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시간이 가는 것 같지 않고 그냥 짙어지고 찐해지는 것 같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어딜 떠났을 때에는 그 곳의 기억이 시간의 제곱에 비례해 흐려져갈 것을 걱정하며 미련을 부렸는데, 지금은 완성된 나의 저장공간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훈련소 때 이미 어렴풋이 느껴 본 감정인데, 내가 지금 어떤지, 지금 어딘지, 지금이 어떤 순간인지는 살짝 위로 올라가서 내려보면 의미가 거의 없다. 일은 새롭게 일어난다기보다 점차적으로 발견된다.

박지선씨가 「여러분 저 실제로 보니까 어때요? 티비보다 낫죠? 그렇다고 좀 트위터에 올려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 마침 동생에게 「와 박지선 실물도 똑같애」라고 카톡 날리려던 참이었다. 미안해서 「근데 진짜 재밌다」고 덧붙였다. 우연히 마주친 판교역 라디오 공개방송이었다. 이 방송이 끝난 후 박지선 박영진 두 분은 저 옷 그대로 입고 생방송 퀴즈쇼에 출전해 큰 상금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아직 내가 전역하지 않은 것을 계속 까먹는 나의 옛 선임들 넷과 옛 상관 한 분을 만나 여성이 마시면 더욱 좋은 검은 콩 막걸리를 전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1. yam

    ㅋㅋㅋ 마지막 사진으로 검은 콩 막걸리는 남성에게도 조은 것을 알 수 있습미다…

  2. 김괜저

    착란이 옵니다

  3. 짠지

    색감이 어쩜………. 사진들이 정말 예뻐요 🙂

  4. 김괜저

    고마워요 🙂

  5. n

    박지선…ㅋㅋ 새벽에 키보드 내려치며 웃었습니다…… 사진 잘 보고가요ㅋㅋㅋ 아 웃음을 멈출 수 없네..ㅋㅋ

  6. 김괜저

    미안해서 혼났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