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기가 없어 밖에 나왔다.

상황을 묘사해보겠다. 오늘 열시에 아파트 단지 전기공급이 끊겼다. 공지를 뒤늦게 확인하니 두 시간동안 정전이란다. 어제 찍은 사진 보정하던 것이 일부 날아갔다. 원본은 말짱하니 재앙은 못 된다만 의욕을 앗아갔지. 윗도리를 갈아입었다. 특히 부드럽고 뽀송뽀송해서 좋아하는 단색 원형목 반팔 티가 세 개 있다. 두 개는 무인양품, 하나는 어반아웃피터 블록 제품인데 각각 연분홍, 짙고 흐린 풀색, 옅은 남색이다. 남색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집 앞에 안양벤처다임이라는 고층 사무실 집중 건물이 있는데 일층에 있는 카페시엘이란 커피집이 무척 초콜렛맛이 많이 나는 더치커피를 판다. 또 지하엔 영세한 책방이 있다. 시사in, 한겨레21, 주간경향을 하나씩 샀다. 카페시엘에서 더치커피와 머핀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평일 오전에 집 근처를 배회하는 기분이 어딘가 평온하기도 공허하기도 하다. 큰 근심거리는 없는데 시간을 채울 것이 필요한 기분. 유모차 끌고 나오는 삼십대 전업주부들이 이런 기분에 대항하는 기술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번주는 시사인이 제일 재미있다.

  1. chloed

    저도 urban outfitters 브이넥 반팔 티셔츠 베이지색 하나, 마침 지금 입고 있는 어두운 회색 하나,
    이렇게 두 개 있는데 뽀송뽀송해서 좋아해요!

  2. 김괜저

    잘 때도 자주 입음ㅎㅎ

  3. 시스루

    아기가진 전업주부들은 평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하루하루가 폭탄맞은 듯 바쁘고 힘겹겠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