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얌전하게 지하철을 탈 것을 그랬다.

내가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저렴하고 느슨한 내 에스프레소 기계로 뽑기, 두 번째는 모카포트로 뽑기, 세 번째는 프렌치 프레스에 내리기, 네 번째는 여과지로 핸드 드립하기. 마지막 다섯 번째에는 질적으로 다소 저열한 ‘카누’나 ‘VIA‘ 류의 즉석커피 같은 것이 속하는데, 이 날도 뜨거운 김 자체를 쐬기 귀찮은 쨍쨍한 날이어서 탐앤탐스에서 파는 소용량 커피원액을 얼음 위에 바로 따라 그냥 마셨다. 간장같은 짠내가 두드러지는 커피였지만 침대 만들면서 중간중간에 마시니 그런대로 좋았다. 두 잔 째부터는 우유를 넣었다.

집에 흰 옥수수가 알갱이 털려 냉장고에 있길래, 기름 없는 지짐판에서 후추 뿌려 구운 뒤 양파와 파프리카, 해바라기씨, 페타 치즈 절임을 넣고 버무려 한 끼를 해결했다. 후딱 먹고 약속 장소인 신촌으로 나섰는데, 얌전하게 지하철을 탔으면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탔고, 결정적으로 용산에서 사진 몇 장 건지겠다고 신용산에서 버스를 갈아탄 것이 화근이었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나 이제 버스 탔으니까 십오분이면 가」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어휴 학생 지금 시간에 거기 십오분에 못 가」라며 같이 걱정해주었다. 결론적으로 신용산에서 연대앞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서대문 부근에서 차가 꽉 막히자 아주머니는 연신 「거 봐 못 가지」를 되풀이했다. 난 특히 강북에선 창 있는 버스가 좋은데 세상은 지하철을 권한다.

  1. dearsnow

    이번 사진들에서는 [덩어리]들이 보여요.그런 덩어리들이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다가 문득 영화 피에타라 생각나요. 보고 싶은 영화라 곧 볼 영화인 피에타는내용도 잘 모르겠는데 사진들 속에서 피에타가 보이는 것은 마리아상 때문일까요? 마지막 사진 좋아요. 미국 서부의 황야를 달리는… 마차같은 느낌이예요. 사람없이 저렇게 움직일 것 같은…

  2. 김괜저

    어떤 덩어리일까요

  3. dearsnow

    사진을 보면서 왠지 다.르.지.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음, 렌즈, 마리아상, 벽, 옥수수, 볶음밥, 포장마차, 사람, 바닥의 돌들 그리고 마지막 사진속의 것들이 어떻게 보면 하나 하나의 덩어리지만 왠지 같은 말을 하고 있거나 보여지기는 다르지만 같은 거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이… 저에게는 보였어요. 음… 덩어리라기 보다는 거울일까요? 서로를 비춰주는…

  4. 명품추리닝

    오오, 집에서 저렇게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계시다니…

    의남매 맺기를 잘 했네요. 처음부터 혈육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형제님.

  5. 김괜저

    원두가 몇 종 안돼서 별로 다양하지는 못합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