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개같이 나왔다 들어갔다.

핸드백 안에 어울리게끔 까맣고 분홍색 칠을 한 병모양만 빼면 요새 마시는 검은콩차는 무조건 합격이다. 갈증도 풀리는데 고소하다. 하늘보리 안 먹고 요샌 이걸 많이 마신다. 미국 가면 검은콩을 왕창 삶아다가 콩은 걸러 빻아서 동그랑땡이나 팔라펠을 만들고 물은 식혀서 싸 갖고 다녀야겠다. 좋은 생각이다.

일요일에 딱 열두시간 짜리 일일휴가를 써서 나왔다. 나보다 이십 일 정도 먼저 전역하는 친구를 가경에서 만나서 던킨도너츠에서 시덥잖은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버스를 탔다. 방학중인 엄마가 마중을 나왔고 언제나처럼 커피와 스콘을 사서 집에 왔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김씨스터 방에 무지막지한 포장재로 둘둘 말린 채 한쪽 구석에 기대 있는 목재를 대충 확인했다. 이제 나무까지 왔으니 침대를 만드는 그 큰일은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서울까지 올라가 친구들과 매우 압축된 형태의 상봉을 마치고 도로 집에 오니 귀영 버스를 탈 시간이었다. 한정되어 있는 휴가 중 하루를 뚝 떼어 이렇게 반나절 쓰고 버린다는 데엔 뭔가 사치스런 선택이 작용하지만 하루를 들여다보면 굉이에 쫓기는 쥐새끼마냥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딱할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이 노래를 한 스무 번 정도 돌려 들었다. 「기다려줘 / 기다려줘 /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 김광석 : 기다려줘
  1. 유진

    나도 무한반복중~ 8090 콘서트 얼렁 생겼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