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을 먹고 나왔다.

곡물 식빵에 페스토를 바르고 집에 누군가 사 놓고 안 먹고 있던 썬 햄과 사과 조각을 얹은 뒤 상하에서 나온 짜 먹는 까망베르(치즈는 25% 정도 들었다)와 바질을 뿌려 오븐에 구워먹었다. 세 조각을 엄마와 나눠 먹으니 적당하다. 느끼한 걸 만들 때 습관적으로 사과를 썰어서 올려먹는다. 우리나라 사과는 과즙 많고 달달한 종뿐이라 섞어먹고 올려먹기에 제격인 건 아니지만 냉장고에서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껍질이 짜글짜글해져가는 사과를 보면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집에 있는 것만으로 많은 걸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은 걸 할 수 있어서 문제다. 지난주 한겨레21인가 시사in인가,에 냉장고 용량이 커지는 현상을 아주 상식적이고 재미있게 비판한 글이 있었는데 요새 가정집에서 큰 축에 못 속하는 우리 집 냉장고 안에도 기회를 놓친 식재료들의 세상이 옷장 속 얼어붙은 나니아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새롭고 신선한 재료 사는 걸 좋아하고, 휴가가 짧고 먹어야 할 건 많은 상황에서 냉장고에 반토막씩 남겨 놓고 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뉴욕에서, 특히 St. Mark’s Place와 중화동(中化洞) 근처에서 살면서 버블티는 배고픈데 먹기 애매할 때 늘 마시는 음료였다. 여러 번 Saint’s Alp(대만 버블티 연쇄점)의 완벽한 무가당 우유홍차 버블티로 끼니를 때우며 걸어다녔다. 새로 바뀐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한켠에 있는 버블티 연쇄점에서 코코넛 버블티를 먹었다. 홍차 아니면 안 먹었는데 코코넛이 왠지 잘 어울리리라는 느낌이 들어 시켰는데 최고였다. 왜 지금껏 코코넛 버블티를 먹지 않았을까? 새로 단장한 뒤 처음 가 보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너무 빤딱빤딱하고 형광등이 너무 눈부셔 비호감이었지만 코코넛 버블티를 발견했으니 되었다. 한가람문구에서 종이와 풀 바를 붓을 샀고 혼수매장 한 켠의 원단가게에서 캔버스 두 마, 부자재 가게에서 지퍼 여럿, 화훼상가 구석에서 마끈 십 미터를 샀다.

한편 신세계 지하 Dean & Deluca 생긴 뒤 처음 커피를 사 마셨다. 뉴욕에서 딘앤델루카의 커피는 옆 건물에서 수업(Contemporary Latino Culture recitation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일 때 자주 갔었고 그 외에는 싸고 더 나은 곳이 많으므로 거의 갈 일이 없었는데, 그래도 커피 맛이 무척이나 일관되어 한 모금만 마셔도 딘앤델루카 커피라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커피 맛에 비교적 특별히 민감한 건 아니다) 곡물 향과 초콜릿 맛이 진하게 나서 라떼로 어울렸다. 그런데 국내에 들어온 이 딘앤델루카에서 그 향이 느껴지면 프루스트적인 시공간 뛰어넘기가 이뤄질 것 같아 기대했는데, 아무런 다른 향도 나지 않았다. 꼭 그 맛이 나야 될 필요는 없다는 건 아는데 그래도 나처럼 뉴욕(또는 일본) 향수병 환자들이 팔아 주는 양도 꽤 될텐데 감동 한 번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다.

오후에 신사로 이동, 독립상영관 인디플러스에 처음 가서 군인인 내가 관람한다는 자체가 허락된 것인지 알쏭달쏭한 저예산 다큐멘터리 <미국의 바람과 불>을 즐겁게 관람했다. 스폰지하우스 있을 때는 압구정, 그 뒤론 종로/광화문만 가다가 신사에 독립상영관이 있음을 알고 약도를 보며 「아니 대체 이 근처 어디?」라고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브로드웨이 시네마에 기생하는 형태에 그치고 있어 독립영화관 특유의 기분은 낼 수 없었다. 영화는, 뭐 모아서 얘기하겠지만 (계속 미뤄진다 언젠가는) 나쁘지 않았다. 두세 명이 한 관 차지하고 본 영화들은 대부분 기억에 좋게 남는다.

  1. 한잎

    사진작가신가요? 사진 정말 예뻐요!

  2. haley

    사진 조으네요, 저분 웃는 모습이 정말 훈훈해요~

    이런 사진 찍어두면 보물마냥 아끼게 되죠 ㅎㅎ

  3. 슬스

    사진 정말 잘 찍으시네요 ㅋㅋ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4. ...

    개인의 초상이 무단촬영되거나 공개,배포되는 것은 초상권침해에 해당합니다. 법적으로 , 좋은게 좋은것이 절대 아니니 유념해주세요.

  5. 김괜저

    절대 가볍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니라 지금껏 대부분의 일반인 사진을 흐림처리하고 있었는데, 예외적으로 너무 사진이 좋아 그냥 게시했습니다. 직접 문제시하는 일이 없으면 두려고 했는데 제 3자에게도 우려를 일으킬 수도 있었네요. 걱정 고맙습니다.

  6.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7.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8.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9.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10.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11.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12.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