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활관 이사를 했다.

나는 생활관장인데 그건 스무 명 남짓한 우리 부서 병사 동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멋있는 일을 많이 하면 저녁에 잘했다 멋있다고 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땀도 좀 흘리긴 하지만 부끄러울 일, 눈치 볼 일 없이 바쁜 게 고마운 노릇이다. 정확히 일 년 전에 우리 부서는 낙후된 생활관에서 신축생활관으로 이사를 갔다. 올해보단 선선했던 8월,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분위기를 내 가면서 주말 내내 옮겼던 게 일 년 됐는데, 예전의 그 낙후된 생활관을 새로 꾸민 곳으로 어제 다시 이사했다. 비슷한 일이 두 번째 일어나면 군대에서 지나간 시간이 몸으로 느껴진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일이면 세 번째는 없다는 소리이므로 두 번째 겪는 그 경험이 매우 특수하다. 이사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사를 많이 해 봤다. 2006년 이후 일년에 한 번 이상 거처를 갈았으니까. 더구나 그렇게 옮겨다니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탈것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전부 손수레로 옯겼다. 하지만 옮기다 말고 길바닥에 앉아서 아무데나 즐비한 커피집에서 얼음 든 걸 마시고 짐 위에 걸터앉아 책 보고, 그럴 수 없이 닥치고 오늘 저녁까지 A에 있던 모든 걸 B에 존재케끔 해야 한다는 것 그 여유의 차이가 참 크다. 어쨌든 굉장한 속도로 전부 옮겼다. 이십 시 되어 눕자마자 잠이 왔지만 중간에 잠깐씩 깼다. 폭염이 직접적인 요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공군사관학교에서의 첫 주를 보냈던 ‘신병대기생활관’이었던 그 방에 전역 두 달 남기고 돌아와 다시 누워 있다는 게 얄궂게 느껴졌다. 그러나 물론 폭염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텔레비전 연결선을 전 집주인들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떳는지 연결이 되지 않아서 올림픽 없는, 덥고 달 밝은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