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스레 SSG 푸드마켓에 갔었다.

그보다 전에 신세계 푸드마켓에 갔었는데, 그건 <배트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러 가는 동기와 비슷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인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만큼을 해 놓았다니 보고 평가하고 싶다는 그런 자뻑 젖은 태도로 갔다. 청담동은 거의 이 년만이다. 신세계 푸드마켓은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곡동 스타슈퍼를 만든 뒤 또 한 번의 굵직한 ‘안목 과시’형 고급 매점이다. 최고급 제품들로 가득 채웠냐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름 고급 장류 꼭지도 마련하고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도 준비하는 등의 차별화로 구색을 맞추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외국 주요 도시에서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입 고급 식료품점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건 제품 수로 보면 적은 편이다. 영국 Waitrose가 마치 최상류층이 향유하는 브랜드인 것처럼 부풀려 진열하고, 고급 치즈에 일반 대형마트에서도 볼 수 있는 저렴한 놈들을 조금씩 더 높은 가격이 섞어 놓았으며, 몰스킨이나 프랑스제 문구를 취급하고 주방용구는 온통 Good Grip으로 쏟아놓은 걸 보니 그야말로 신세계스러운 획일화된 고급취향이 느껴졌기에 각각의 제품들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약간 가슴이 답답했다. 파리의 Le grand épicerie du Bon marché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여느 도시의 Whole Foods 정도의 예측할 수 없는 재미난 그러나 품질이 보증되는 선택력을 보였으면 했던 것은 과한 기대였다.

수입품 좋아하는 내가 이곳을 둘러보고 아 여긴 천국이야 하는 대신 이런 애매한 실망감을 느낀 건 나 스스로에게도 약간 당혹스러운 일이다.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는 걸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청담동과 해운대에 있는 신세계 푸드마켓은 거기 있는 걸 같고 싶어서 열심히 돈 벌고 싶어지는, 훌륭한 고급매장이 마땅히 가져야 할 그런 매력이 없다. 포장재도 확 줄이고 진열도 좀 더 간단하고 옛스럽게 해서 저탄소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물론 그래도 주변에 갈 일이 있으면 잠깐 들러서 말린 과일 같은 건 좀 살 수도 있겠다. 주변에 산다면 야채와 과일, 드라이에이지한 것도 있는 한우, 곡물을 사기엔 매우 좋다. 베키아누보의 커피는 훌륭하지만 자리가 너무 부족했다. 건물에 미니 분더샵과 호무란(조선호텔 스시조 계열)은 평이 좋다고 들었다. 그래머시 홀이라는 ‘프리미엄 카페&레스토랑’은 처음 봤는데 우리 학교 기숙사 이름을 그럴싸하게 붙여놓은 게 재밌었다. 그래머시, 첼시, 블리커 이런 이름들이 고가 요식/패션 쪽에 여기저기 쓰이는데 조금 우습다.

  1. 별일없이산다

    뉴욕에 있는 거랑 이름 똑같은 식당도 많더라. Waitrose는 좀 황당하네. 나도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Whole Foods랑 비교하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