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촌에 아무 이유 없이 갔다.

신촌에 아무 이유 없이 갔다. 내게 신촌은 아무 이유 없이라도 가지 않으면 도통 갈 일이 생기지 않는 곳이다. 외가 친척들 보러 갈 때 빼고는 꼭 거기서 만나야 좋은 사람이 있는 적도 없고, 특별히 거기가 아니면 없는 것을 구하러 갈 일도 없다. 그래도 신촌에서 예전에 헌 책방에 몇 번 갔었던 게 생각나서 그걸 하기로 했다. 상암에서 신촌 가는 버스를 탔다.

연대 앞에 내려서 신촌역까지, 곁가지로 난 길들을 괜히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갔다. 혹시나 내가 안 와 본 몇 개월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어느 한 구석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예 없진 않다. 역시나 그런 기미는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걸으려고 했던 길을 못 참고 쌩 지나가버렸다. 사람은 많았지만 흥미로운 사람은 적었다. 저 사람의 이번 주 일주일은 이랬겠구나, 별다른 미안함 없이 그렇게 단정지어버리기 쉬운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남에게 보이는 나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구나, 저 사람은 공군에서 일하다가 이번 주말에만 나왔구나, 하기는 어렵겠지. 불쌍하지만 어쨌든 남다른 것이니 좋다.

언제인지도 모를 예전에 와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는 그 헌책방은 아니지만 인근에서 소문이 잘 나 있는 <숨어있는 책>으로 갔다. 요새 <알라딘 중고서점>같이 깔끔한 헌책방이 곳곳에 생겨서 정말 좋지만 내가 찾는 책 없이 괜히 가고 싶은 곳은 <숨어있는 책>처럼 별다른 안목으로 걸러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제대로 걸러졌을 것이다) 낡고 때 탄 책들이 종횡무진으로 쌓여 있는 곳들이다. 값도 더 싸고, 웬만한 책으로부터 학습을 기대할 수 있는 초보독자 그러나 흔한 책 흔한 판본은 무조건 싫은 허세까지 있는 나 같은 분에게는 그런 데가 맞다. 제목도 못 읽겠으면서 황석영의 소설을 샀다(쪽팔려서 무슨 제목이었는지는 추측이 난무하게 두겠다). 또 반가운 프랑스어 구역에서 까뮈의 책도 하나 샀다. 한 번에 부분부분밖에 못 읽고 집어던지면서도 계속 사 모으는 게 까뮈의 책이다. 내게 까뮈는 후임친구 Jay의 니체같은 존재일 것이다. 아니다, 그 친구는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 좀, 약간 다르다.

  1. Buscape

    신촌이 무작정 재미 없게 느껴지면서 뭐라 단정지을 수 없었는데 여기 답이 써있네요. 그냥 그저그런 일주일을 보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 제 느낌을 여기서 읽고 갑니다 🙂

  2. 김괜저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3. rose

    신촌가서 떡볶이 먹고싶다. 바쁘지 않아서 슬프다 ㅠ

  4. 김괜저

    신촌에 떡볶이가 맛있어? 내가 떡볶이를 잘 안먹어서

  5. 몽상가

    음 저렇게 책이 단정하게 꽂힌 신촌 헌책방은 본적이 없는것 같은데요.. 어디죠..

  6. 김괜저

    8번 출구 방향 <숨어있는 책>입니다.

  7.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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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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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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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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