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들지 않는 인생은 무안한 인생이라 본다.

요리는 식사보다 어렵다. 출전은 응원보다 어렵다. 연주는 청취보다 어렵다. 건설은 주거보다 어렵다. 촬영은 관람보다 어렵다. 집필은 독서보다 어렵다. 모든 만들기는 어렵다. 어렵지 않다면 그게 진정 새로이 만든 것이 아니거나, 즐거움에 빠져 두통을 잊은 것이다. 사람은 남이 만들어 준 것들을 쓰고 남을 보고 배우고 남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빌리고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데, 때문에 사람은 매일 그 날 분량의 인생을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생각과 물건을 다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식사와 응원과 청취와 주거와 촬영과 독서의 매력에 빠져서, 온 힘을 그렇게 즐기고 받아들이고 느끼는 데에 쓴다. 첫 날은 아마 무한히 풍요롭다. 건축을 한다는 남이 지엇고 정년퇴임하신 남이 지키는 이십사 평 짜리 아파트에서 낳아 기르신 남이 지어 준 콩밥이랑 오이소박이 먹고 학창시절부터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남들이 하는 야구경기 보고 이번 주 고별가수전을 걱정하는 남이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어디선가 여자친구도 없이 얼굴은 점점 못생겨지고 골방에 처박혀 얼마 안 남은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 피를 흘려서라도 빈 원고지를 채우고 싶어 신음하는 그런 불쌍한 작가가 어쩌다 우연히 낸 사건이라 보면 되는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과 하드보일드한 전개가 시간 때우기 용으론 그럭저럭 괜찮은 소설을 본다. 집은 구조가 별로고 밥은 너무 질었고 저 투수는 오늘도 답이 없고 가수는 오늘도 터무니없는 원곡에 되않는 시도를 하신 게 무리였고 소설은 이 정도 문장은 나도 쓰겠네 싶어 콧웃음을 참으며 겨우 봐 줄 만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남의 것을 계속 보고 입고 먹고 읽으면 눈이 높아진다. 높은 안목은 자랑거리이다. 그것은 남에게 내가 즐기는 수준은 이 정도니까 알아두라고 은근히 과시하는 데에 쓴다. 그러면 보통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과시의 동산인데 그런 마음으로 보면 볼수록 하면 할수록 점점 높아진다. 눈이 차츰 높은 데로 올라가면 그만큼 눈에 차는 게 줄어들고, 좋은 것과 덜 좋은 걸 구별하는 식별력이 점차 아무것도 충분히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아지는 증세로 발전케 된다.또 고급입맛을 만족시킬 걸 찾고 고집하다 보면 허리와 목이 쉬이 피로하게 된다.

그런데 직접 뭔가 새로운 걸 만들려고 없는 애 낳을 힘을 쓰며 하루밤만 보내 본 사람이 있다면 금방 그런 과시의 동산에서 내려오고 싶어진다. 사실 종이 한 장으로 세상에 없던 걸 접어보라고만 해도 나는 겸손해진다. 물론 내가 올라가 본 것보다 낮은 동산에 올라가 남이 만든 것들을 향해 위로 침을 뱉으려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더욱 철저히 얕잡아보게 된다.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시도는 결과가 얼마나 처참하건, 오히려 처참하다면 더 갈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은 음식이고 내일은 시 한 편이고 모레는 노래 한 곡이라도, 나다운 건 모르겠더라도 남 답지만은 않게, 그 누구보다도 내게 자격이 있는 걸 하나만 짓자고 생각한다. 트위터에 「오늘은 이런 허접한 것을 보았다 이것 좀 봐」 하는 말로 조롱의 공감 구하는 습관이 흐려진다면 더욱 좋겠다. 결국에 새로운 걸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은 어느 쪽으로 보나 한 판 더 깨고 온 사람이다. 그렇게 즐기고 좌절하고 너그러워지다 보면 결국에 착한 사람이 될른지도 모르는 일이다. 착한 건 재미없지만 그런 변신을 하는 거라면 가볼 만 한 길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스스로 알게끔 되뇌이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많이 알고 많이 본 많은 사람들처럼, 심드렁(blasé)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1. 김괜저

    모두를 조금씩 꼬집었기를 (저 포함)

  2. h

    박수를 보냅니다!!! 🙂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이 모든 상황과 인간사를 자신안에 함께. 버무릴 수 있는 멋진 작가의 탄생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3. 김괜저

    맛있고 기름지게 버무리렵니다

  4. ko-un

    굳굳굳!!!

  5. 떡잎

    후아, 이렇게 바람직할 수가. 저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스무개!

  6. 김괜저

    감사 스무개:)

  7. Ji Lee

    공감해요. 만드는 건 참 어려워요 결과물보다 과정이 훨씬 더 힘들구나 싶을 때도 많고.

  8. 김괜저

    맞아요.

  9. 크리슈나

    사실 종이 한 장으로 세상에 없던 걸 접어보라고만 해도 나는 겸손해진다.
    저도 이 문장에서 겸손해지고 갑니다. 없던 문장을 하나 쓰는 것만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ㅠㅠ 항상 쓰시는 글 잘 보고 있는데 오늘은 정말 더 와닿네요!

  10. 김괜저

    고맙습니다.

  11. 김괜저

    저도 평소엔 그렇게…….

  12. 마말

    세상에, 과시의 동산이라니. 표현이 너무 맘에든다.

  13. 김괜저

    ㅋㅋ요샌 뭐해

  14. chloed

    김기덕 감독이 “인간이 현실에서 행할 수 있는 구원에 가장 근접한 행위가 손으로 물건을 지어내는 일”이라고 했더라구요. 열심히 만들어야겠어요.

  15. 김괜저

    음……. 구원받아야겠네

  16. 제이 정

    이걸 읽고 결심하고다짐했어. 난 반드시기필코 형을 꼬셔야 된다는 것을.

  17. 김괜저

    굳 럭ㅋㅋ

  18. e

    네. 높은 안목과 세련된 취향은 본인만 즐거워지기 어려운 밉상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있는것 같아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섹시하진 않지만 의외로 재미있을런지도 몰라요.

  19. 김괜저

    섹시한 밉상은 별로

  20. sioRn

    좋네요

  21. 카방클

    창작 = 인성교육 이렇게 될 수 있는거군요

  22. 태구

    너무 공감하고 갑니다. ^^

  2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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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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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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