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롸이터인 것과 작가인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작가들이 쓴 작가됨에 관한 책을 종종 읽는다. 작가를 전혀 모르고 소설을 앍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금시초문인 작가라도 문답이나 글쓰기에 대한 수필 같은 건 적당히 짧아준다는 가정 하에 곧잘 읽는다. 작가라는 업을 이미 동경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썼구나 싶은 글이 개중에 많다. 그런 책은 조언을 구하려고 읽는 게 아니라 난 언제쯤 저렇게 난 부족하오 그러나 난 작가요 라고 대뜸 선언할 수 있을까 그런 대리만족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작가라고 하는 것과 영어로 롸이터, 하고 부르는 것은 크게 다른 느낌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참으로 비장하고, 순간순간에 뭔가가(애절함이, 웅장함이, 심지어는 귀찮음이나 무료함일지언정) 서려 있어 가벼움마져도 어떤 시대적인 무게감으로 표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진심이 뭐길래, 목숨을 건다. 장난도 사색 중에 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물음에도 소재, 구조, 서사, 인물, 문장 같은 것보다 인품, 인생, 자격, 책임, 의식 이런 얘기를 한다. 한국의 작가들은 대부분 무진장 겸손하지만 그 겸손은 ‘익어서 고개 숙이는’ 인상이 짙어 이상하게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영어의, 적어도 미국의 롸이터는 그정도까지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소설가들은 마치 발명가나 공학자처럼 기법의 완성이나 표현의 확장, 세계와 인물의 건축과 같은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순간을 짜내서, 현실의 결을 존엄하게관찰하기보다 펜끝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한꾸러미씩 싸들고 비누거품처럼 쏟아져나오는 그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인간됨이 하나이고 세계가 하나이며 현실이하나인 한 문학도 결국 하나이겠건만, 난 내가 롸이터인 것과 작가인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영어로 술술 쓴 글을 한글로 옮기기가 민망해지고 껄끄러워질 때가 많은데 단순히 배경이 된 문화가 언어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가 쓰는 소설이란 것과 롸이터가 롸잇하는 노블이란 것이 그만큼 상이한 물건들이라는 마음 때문이다.

  1. 김괜저

    귀여워서 고치지 않았어요.

  2. kidsmoke

    아 폰트부터 글까지 언제와도 매력적인 블로그!

  3. 김괜저

    아! 아!

  4. chloed

    저도 비슷하게 느꼈어요! 아주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문文이 가졌는 의미도 좀 남다르고 특히 20세기 들어와서는 국문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도 강해져서 그런 건지

  5. 김괜저

    그런 무게에 반발하는 젊은 작가들 엄청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난다.

  6. 별일없이산다

    너 글 잘쓴다를 번역하면 너는 좋은 롸이터다 되는것도 같은 맥락인가.

    괜저야 너는 좋은 롸이터야.

  7. 김괜저

    너는 잘 롸이트한다 라기보다는 그게 맞네요.

  8. e

    목숨걸고 쓰면서 겸손한 한국 작가 두 분만 추천해주실수 있으실까요.

  9. 김괜저

    아 한국 작가를 추천하기에 제가 아는 게 너무 없고요 읽은 게 너무 적어요.

  10. 김괜저

    저도 저번에 추천을 받았습니다.

  11.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