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부탁한다.

점심 약속이 개포동에서 있었다. 만날 때마다 ‘규모를 갖춰 간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하게 급속 팽창 성장하는 전 직장의 대표님은 난처하게도 오늘 만나자는 김괜저의 문자를 이괜저로 잘못 알고 나와 크게 당황하는 상황이 됐다. 그간 (10개월 가까이) 있었던 일 중 굵직굵직한 것만 간추려 들었다. 내가 보태던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건 신비로운 기분이다.

도곡 주변을 걸어다녔지만 역시 볼 일 없기로 유명한 동네. 어제 심하게 장을 봐 놨던 터라 시티슈퍼에도 눈이 가는 게 없었다. 오늘은 종일 망원렌즈만 가지고 다녔다. 해가 끓어서 망원하기 딱인 날이었다. 망원은 풍경용으로 흔히 인식되지만 내게는 행인을 땡겨 찍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당겼을 때 뽀얀 배경에 주인공만 돋보이게 심도를 얕게 두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비엔나에서 십만원에 챙긴 저렴 중고렌즈에 그것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삼호선으로 충무로로 올라갔다. 종이 냄새 때문에 볼 일이 없어도 가끔 걷는 게 좋다. 흥인지문까지 걸었다.

가는 길에 CJ Foodworld가 나온다. 찾아가긴 애매한 곳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들릴 수 있었다. 첼시 마켓처럼 다채롭고 활기찬 모습이면 참 좋았겠지만 정반대였다. 그렇다고 내가 CJ의 브랜드들, 올리브 채널부터 뚜레주르까지의 정말 눈물나는 관리노력을 보여주는 그 브랜드들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뒤쳐지는 것 없이 어느 걸 사도 중간 이상은 하고 요리나 음식문화에 대해 어쨌든 나서서 뭔가라도 늘 하려는 기업이니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를 한 곳에 모아서 이렇게 쭉 늘어놓으니 팬시용품 전문점 같고 어느 한 곳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자기 브랜드로 채우려는 욕심보다 공간을 제공하고 한가닥씩 하는 가게들을 유치해서 비슷한 규모를 만들었으면 둘도 없는 곳이 되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CJ의 소위 ‘디자인 경영’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30% 정도 유치하다. 너무 정돈돼 있고 끼워맞춰져 있으며 개성이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일인자인자(一人者因子)가 결여됐다. 미안하지만 은근히 강요하는 만큼 기뻐해 줄 수가 없다. 그리고, 저녁에 가족과 빕스를 또 가게 돼서 다시 한 번 생각난 건데, CJ는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부분의 인적자원을 더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빕스 정도의 가격을 내고 먹는 식당에서 피자헛보다 못한 학생알바들이 늘 분위기를 깨는 게 안타깝고, 푸드월드 정도의 플래그쉽이면 각 꼭지의 전문가들이 포스를 풍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에게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드리겠는 정도 이상의 실력직원이 안 보였다. 말이 길어졌네. 이 얘기 쓰려고 쓴 글도 아니거니와 의도한 제목도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동대문 종합상가를 들렀지만 별 거 사지는 않았다. 광목이 필요하긴 했는데 시간대를 잘 못 맞춰 가서 그냥 인터넷으로 사기로 했다. 뭐 살지는 정확히 아니까 괜찮을 거다. 돌아오는 길에 녹사평에 들러 말년병장 무가식 씨를 잠깐 보고 왔다. 아, 비슷하게 입대한 무가식과 천적이 전역을 앞뒀다. 절친의 전역은 입대보다 슬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