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도 나였다.

범계중학교 2층 방송실 방송칸 안 창가에 앉아 또 이재진과 강성훈 솔로음반을 신청한 징글징글한 젝키팬에게 CD를 넘겨받으며 내려간 발목양말을 추어올리던 그 때 그 놈, 앞머리를 까면 죽는 줄 알았던 그 때의 나는 도무지 나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륙 년 전의 김괜저는 The Velvet Underground보다 자우림을, 양희은보다 조성모를 좋아했었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가 뉘냐는 질문에 「톨킨입니다」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던 놈이었다. 물론 대놓고 진지하게 그러진 않았겠지만 비밀번호 분실용 질문답변과 같은 사적인 곳에선 그게 진실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를 막 다 읽었는데 반지의 제왕에 대한 언급과 인용이 무척 많아 그 때가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군인(그제 병장을 달았는데: 축하하면 미워할 것임)으로지내는 나 역시 칠팔 년 지나면, 아니 칠팔 년이 뭐야 뉴욕에 돌아가 일 년만 살아도 내가 언제 그런 하급관물(下級官物)였단 말씀이오 하며 이 때가 까마득해질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 그 삼십살의 나는 부디 이 글을 우연으로라도 읽고 그래 나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아침의 낙은 실내점호, 일과 중의 낙은 일층매점이요 저녁의 낙은 귀여우신 후임친구들과 족구와 체스와 마피아하는 것이었던 시절, 휴가날 아침엔 제2정문까지 걷는 길이 극락가는 하늘길인 마냥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느같은 군대사람이었던 때가 있었단 걸 기억하기 바란다.

  1. 김괜저

    안감사합니다 🙂

  2. Buscape

    극락가는 하늘길!! 캬 밖에선 어떻게 해야 맛볼 수 있을까요?

  3. 김괜저

    일단 입대를 해야 맛 볼 수 있는 맛일 듯…….

  4. cheere

    서른이 되어도 소재만 바뀌고 글은 계속 잘 쓰실 것임.

  5. 김괜저

    지금보다는 잘 써야겠습니다.

  6.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