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오후쯤 나를 지적했다.

Self Portrait as St.Sebastian by Egon Schiele, 1914

좋아하는 정도의 범위 내에서 쌀쌀하게 비가 내렸기 때문에 공중전화도 쓸 겸 해서 건물 뒤쪽에 있는 공원의자에 앉아서 좀 비싼 즉석커피를 마시고 <죄와 벌>을 읽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은 퍽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엔 할 일 없이 빗가에서 책 보는 것에 수긍할 만한 사람이 안 보였기 때문인지 마치 내가 꽤 괜찮은 사적 취향을 가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그런 우월감을 담아 난 이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고 표현한다면 금방 그런 기분은 식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말과 글이란, 물론 몇 가지 다른 기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러이러해서 내가 잘났고 저러저러해서 나는 잘했다는 식의 우월감을 띄워보내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중심이 되는 이야깃거리에 장식처럼 얹어서 보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좋은 것만 골라 내어 좀 더 완벽해 보이는 상태로 만드려는 본능을 가진 것 같고 그건 나 스스로를 포장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나 엄마에게는 있는 그대로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작가건 미술가건 파워블로그 운영자건 (맛집, 여행, 패션, 심리테스트) 자기 밖의 현실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열정을 구성하는 경우를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3km 오래달리기 최근 기록이 16분대인 청년(나와는 상관없는 예임)이 하늘을 나는 꿈을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이카루스의 눈물>이란 멋진 제목으로 장르소설을 연재한다든지 (네이버 검색을 해 보니 실제 있는 제목, 의도한 바 아님) 기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서사와 심상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나 역시 글을 쓰면 이십사세 대한공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쓰기보다는 인종을 알 수 없는 도시 젊은이들이나 얄팍한 팔십년대 청년을 중심에 둔 글이 나온다. 그러나 실로 한 장 한 장이 대단한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당연한) 결론은 깊이 피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한 글이 강력할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이고 남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화가가 걸작으로 자화상을 남기는 그런 교훈(아 따분해…….)이다. 인생을 벗어나면 반칙이다.

Wishlist : 바보 똥개 멍충아
  1. ko-un

    끄덕끄덕 고전 좀 읽어야겠어요 잘 손이 안 가지만;

  2. 김괜저

    열린책들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손이 좀 가죠

  3. curbservice

    좋은 글이네요…

  4. 박성준

    형 오랜만이네요 ㅎ
    형 블로그 글이 방대해서,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형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5. 김괜저

    몸둘 바를 모르겠어용

  6. chloed

    선배, 저 방금 도서관에 왔는데 어떤 여자가 책상에 Infinite Jest를 올려뒀더군요.
    그거 재밌니, 라고 물었더니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지만 재밌다고!
    선배 생각이 나서 물어봤던 거였어요. 의사에게는 솔직한 것이 좋지요. 건강하세요 🙂

  7. 김괜저

    이거 읽고 나니까 비슷한 과의 다른 책들을 못 읽겠다ㅜㅜ

  8.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