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져갈 작정이다.

일 분에 이십칠 원 정도를 매기는 컴퓨터는 자유롭게 생각을 만들고 제한 없이 글을 짓고 닳도록 고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이 곳에서 나는 브라우저를 열고, RSS 피드를 좀 읽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스크롤을 각각 스무 번씩 정도 내리고 나서 무엇인가 자취를 남겨야 한다는 본능적인 강박감으로 블로그에 말을 남긴다. 말을 남길 때에는 거의 아무 말이나 쓴다. 글이 짧아진 것은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할 말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겪어야 글을 쓰는데 자극이 적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좋건 싫건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도 나름의 자극을 자급(自給)하는 방법이 있는데 책을 읽는 것이다. 나는 온갖 전집과 교육만화와 미쓰테루 삼국지에 처박혀 살았던 초등 오 학년 때를 빼면 (중간고사 당일에도 평촌도서관 일층에서 책을 읽음으로서 유년기부터 독서를 강조한 엄마(나이 미상, 초등교사)의 가정교육 노선에 큰 장애물을 제공했다) 요즘 생애 가장 책과 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 현재, 양적 질적으로 만만찮은 Infinite Jest을 사무실에 두고, 2008년 문예창작 수업에 초대된 Jonathan Safran Foer가 당시 집필 중이라고 소개했던 Eating Animals를 가방이나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는다. 하루 종일 크게 빵 터진 적도 없이 기억에 남지 않는 날이건 날씨와 노동에 지쳐 머리가 절전모드가 된 날이건 책을 한 쪽이라도 읽으면 당장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문학심장을 바깥까지 가져가야 한다. 지금처럼 이면지에 파랑 플러스펜으로 20세기 초 스페인 대저택의 오만방자 낭비벽 여주인과 그녀를 싫어도 떠받드는 중국인 이민자 가족에 대해 손가락이 너무 아프거나 누구누구 중령님이 부르시거나 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욕심을 가져가야 한다.무엇보다 남에게 당장 보이기 위한 생산을 경계해야 한다. 글로 아무리 잘 돼 봤자 돈 욕심 일 욕심 쩌는 본인을 오롯이 만족시킬 만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므로 훌륭한 비상근(非常勤) 작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태엽을 감는 법을 웃는 얼굴로 체득해야 한다.

다음 주말에 나가면 닭고기 티카 마살라를 만들어 먹고 풍산개를 보고 나서 돌아와 오랜만에 증기로 우리고 얼음으로 식힌 커피를 마시면서 The Fascinating Repercussions of Our Voltaic Loss를 새로 쓸 작정이다. 호두와 조각치즈도 먹으면서 내가 보기에도 기가 막힌 구절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손가락을 튕길 작정이다. 왜냐하면 나 아니면 누가……. 좋은 휴가가 될 것이다.

Plaza del Castillo, Jul 1959. Hemingway’s last visit to Pamplona via Codex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