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상이 좋지만 실패했다.


The End of History Beer by Brewdog

모르긴 몰라도 인상이 좋나보다. 광화문에서 명동까지 가는데만 딱 네 번이나 모르는 사람이 인상이 좋다고 데려가려는데 그런가 보지… 원래는 아침에 커피집에서 엄마와 느긋이 책 읽고 베이글 먹으면서 무가식과 연락을 해서 양재에서 커피 마시러 만나자고 정했다. 그리고 제 시간에 떴어야 했는데 과천에서 음악 듣다가 멍하니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버렸다. 광화문까지 가서 영화 보려 했는데 예기치 않은 임시휴무로 실패, 이웃 인디영화관에 볼 만한 게 있어 커피 먹고 와서 봐야지 하다가 오는 길에 유엔 난민기구에 충동적으로 후원 약속하는 걸로 발 묶여서 너무 늦게 가서 다시 실패. 교보문고 개장 나흘 남아서 실패. 영풍문고엔 찾는 책이 없는데다 덩치 큰 금발분이 제일 중요한 책장을 가리고 앉아 있어서 거의 실패. 「아니 Carver, Cheever, Hemingway를 다 가리고 앉다니 무슨 심보입니까?」 사들고 명동가서 커피집에서 책 읽는데 무가식이 저녁 같이 못 먹어주겠대서 실패.

하지만 난 광화문에서 명동까지 가는데만 딱 네 번이나 모르는 사람이 인상이 좋다고 데려가려 했다. 한 번은 그냥 예 예 하면서 지나갔는데 두번째부터는 그러기엔 좀 심심해서 조금씩 더 적극적으로 반응 해 보았다. 지금은 안 되고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보자고도 해 봤는데 웃을 줄 알았더니 너무 슬픈 표정을 짓더라. 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찔린 듯 「저희 종교 믿는 사람들은 아니구요, 그냥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이에요」하길래 「아니 마음 공부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인상만 보고 데려갑니까?」했더니, 「저 길거리에서 이런 얘기 많이 들으시나봐요」라며 뭔가 분명히 계속 붙잡으려는 것은 같은데 한편으로는 상습대상자 안쓰러워하는 것 같은 구석도 있어 보였다. 「같이 마음공부 하시는 분들 이 주위에 많이 나와계시나요?」 「아 저희는 저희 둘만 하는거라… 근데 저쪽에 저 주황색 입으신 분은 따라가지 마세요.」

— The Carpenters : Rainy Days and Mondays

그래도 다행히 로즈와 영주가 구해주어 판문점부대찌개 먹고 노래방 뛰었다. 끝이 좋으면 좋다.

  1. serene

    하루에 네번이나- 강압적인 마음공부를!
    lower east side 갈 때마다 네 전화번호를 찾다가 멈칫하게 된다는 ‘o’
    나 대신 히비에 가줘 🙂

  2. 김괜저

    곧 갈게요! 저 대신 88 Orchard에 가주세요ㅜㅜㅜㅜ

  3. 박뎐

    적극적인 반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해보겠어요 유쾌해요

  4. 김괜저

    반응이 천차만별이니 주의…

  5. 샐러드

    그 와중에 경쟁자는 견제하는 마음.

  6. 김괜저

    훈훈하죠

  7. 희나람

    으헝 ㅋㅋㅋㅋ 저한테도 많이 오는데.. 어째 내가 이리도 인기 많은건가!!! 라고 생각해보니 도닦는 사람들한테만 인기가 ㅠㅠ

    끝이 좋으면 되는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 김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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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10. 김괜저

    오 내일 이자리 드립을 그쪽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군요! 저도 덴스하고 따뜻한 거 좋아합니다

  11. 김괜저

    왠지 형광색이 끌리는데요
    저와 다방면으로 지인들이 얽히신 거 같아서 신기해요. 요세미티는 경황이 없어서 못 갔는데!

  12. 김괜저

    허걱 하긴 매년 있는, 여러명이 참여하는 풍경이라 그걸론 익명성 아직 잘 보장됩니다… 참 좁네요

  13. 김괜저

    길에서 인사 꼭 해주세요

  1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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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