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만히 쉽다.

생각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명예로운 것 같다. 약간은 남사스러운 어른 흉내같은 어휘도 싫을 것이 없다. 사실은 아직도 궁극의 아무뜻없었음을 굳게 믿는다. 그 태도로 각 잡고 보면, 비웃기지 않고 그저 흐뭇하게 재미있다. 가만히 표정짓는 사람은 반드시 명예로운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이제 거의 완전히, 말이 되는 법을 잊어버렸다. 전쟁 상처를 씻어버린 베테랑같은 기분이지만 가끔은 총탄 날리던 논리정연한 혼돈이 그리워 질 것 같은 때도 있다. 젊음이란 기분 탓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변할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나이로 예견될 수 있는 증세는 아니다. 이쯤에 어쩌면 밤은 밤이고 낮은 낮이고 행복해는 행복해고 옳아는 옳아인 똑부러지는 동료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똑 부러뜨려도 되고 똑 부러뜨리는 것을 미뤄도 되고, 나는 그냥 가만히 표정만 짓고 있어도 된다. 자아의 곤란에 처했을때, 시간이 간다는 은혜를 떠올리면 치트키처럼 쉽다. 뭔 얘기만 하면 나도 왕년엔 그랬다는 꼴통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또 싫은 말에 하나하나 아 그건 싫다 해 줄 수 있는 용기도 없기 때문에, 아니 정말 그렇기 때문에 넉넉한 대나무밭이 필요한데 끄적거리는 것은 내게 일종의 밭이다.


나는 노태우에 맞추어 태어났기 때문에 그 직전에 이한열씨와 같이 다녔던 큰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잠깐 방황하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역사적인 불어작문을 하는 동안에 몸 사리는 인생에 스스로 애착과 경계심이 양립하는 아주 순간적인 명상을 하였다. 나는 아마 죽으려 누워서 숨 끊기기 30분 전 쯤에는 아 빨리 30분 뒤가 되었으면 하는 맘뿐일지도 모르겠다. 생에 낭비란 없다만 그건 곧 낭비 아닌 것도 없으니 말이다.

  1. 강변

    저는 어쩐지 몸과 마음 모두 20대가 사람에게는 가장 빛나는 시절 같아요. 지나간 글들을 뒤적이다 보면, 내가 이렇게 놀라운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하고, 놀랄 때가 많아요. 20대에 그 번득이는 청춘만이 줄 수 있는 비상한 통찰력으로 깨달은 것들을 이후에는 반복, 발전, 확대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묘하게도 괜저님 글은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까지가 공존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요. 저만 그런가요?

  2. 김괜저

    칭찬인 거 같아서 저도 그런 거 같다고 하겠어요… 연령은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