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이랬다.


내가 얼마나 브로그에 정신을 위탁했느냐면, 이제 왠만한 일엔 기억을 더듬지 않고 쓴 글을 더듬는다. 예를 들어 작년 오늘엔 인천행 비행기에서 이브를 보내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점심 먹고, 천적 집 앞에서 베트남 쌀국수 먹고 저녁에 사라미 민도사와 페페비올라에 갔었다. 재작년엔 학교에서 원서 미완성인 상태로 혈혈단신으로 집에 돌아와서, 가족 다 같이 보기엔 민망한 소재였지만 작품성 훌륭했던 연극 <이름을 찾습니다>를 보았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왜 이렇게 덜 특별하지 하고 이렇게 굳이 더듬으면 항상 이랬다는 건 분명하다.
뉴저지도 북부버건시 이모집에 왔다. 성탄 자정미사를 보고 깜깜한 밴에서 동생들과 캐롤 맞추기 놀이를 하며 돌아와 선물을 주고받았다. 이모부는 맛이 2%씩 부족하다며 면박을 준 저녁식사는 너무 맛있게 먹는 내게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와서 할 일이 없을 줄 알고 가방에 페인트 칠을 다시 하려고 (지난번에 했다가 마무리를 허투루 해서 다시 더러워졌다) 스프레이 캔 둘을 짊어지고 왔는데 오랜만에 만난 육촌들하고 노느라고 그건 손도 못 댔다. 여기서는 모든 게 천천히 돌아간다. 미사 시작이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차에 오른다. 한때 나도 같이 했었던 성가대가 성탄 특집으로 준비한 합창 쇼를 들으면서 묵주가 몇 번 돌아갔나 싶었는데 한 시간이 끔뻑 갔다. 모든 게 빨리감기인 맨해튼에서 느릿느릿한 이리로 달리는 버스는 그래서 시간여행처럼 멀미가 심한가 싶다. 괜히 눈에 나가 성냥을 켜 놓고 찬 바람을 맞히는 놀이를 한다. 퀴 톨리스 페카따 문디, 미세레레 노비스. 자비 없이 한 초라도 살겠나.

  1. 김괜저

    써 놓고 다시 읽으니까 지난 성탄이 안 특별했다는 건데.. 사실 다 그립다.

  2. 딖따

    요한 메리 크리스마스! 나도 어제 여기 주교좌 성당에서 하는 성탄 밤미사 다녀왔지. 2시간쯤 되는데 시간이 진짜 휙 지나가더라고. 나는 둔내성당 생각나더라~ 나도 이 긴긴 방학을 뭐하면서 지내나 했는데 일단 잠으로 반나절 보내고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가네 그려. -_-; 새해에 건강하고 하느님 은총 안에서 또 1년 잘 지내길 빌게. 볼 때 또 보자고~~

  3. 김괜저

    딕따 메리 크리스마스 파럼펌펌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