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나는 걸 잘한다.

대통령이 무사히 파면된 어제, 금요일. 천적과 J의 집들이가 7시였는데 캘린더에 8시로 잘못 적어놓았다. 선물로 공구함을 준비했는데 미처 공구함에 공구들을 넣지도 못한 채로 황급히 달려갔다. 둘의 집은 천장이 높고 차분한 하늘색 벽지가 예쁜 공간이었다. J가 준비한 보쌈과 골뱅이 소면을 포도주와 먹으면서 삼갯까지 넷이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떠들고 놀았다: 장기 이식, 통계학, 자연사박물관, 범죄수사극, 지나온 시공간에 대한 환상이나 미련 처리.

그 중에 ‘지나온 시공간에 대한 환상이나 미련 처리’ 주제에 내가 얹은 얘기는 그보다 이틀 전에 동료 C와 점심을 먹다가 나 자신에 대해 사소하게 정리하게 된 내용이었다. 나는 머물렀던 공간에 정을 많이 주는 편이다. 거쳐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전부 떠난 뒤에 다시 돌아가보았다. 심지어 군부대도 전역 후 두 번이나 방문했다. 기본적으로 1년 이상 머문 공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리적인 종결(closure)을 내리기 위한 작업을 한다. 프랑스에서 한 학기를 보냈을 때에 특히 이런 고민이 컸다. 나는 부인할래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살아온 평범한 인문-낭만 구독자이고 그것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오긴 왔는데, 미래에 대한 큰 걱정 없는 친구들과 무더기로 어울리며 성적, 사상적으로 말랑말랑해지는 그 생활이 너무 좋은 나머지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오히려 파리라는 장소에 대한 더 큰 동경이 남을 것 같다는 고민이었다. 나는 파리에게 마음 속 적절한 작은 방을 구해 주기 위해 여름학기를 추가로 신청해 3개월을 더 보내기로 했다. 서로 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친해진 친구들이 뉴욕으로 돌아가고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그 친구들과의 추억과 파리라는 도시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조금 다른 과정이긴 했지만 살 곳으로 뉴욕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심경을 가다듬는 데에는 취업 트레이닝 비자 기간이 끝나고 나서 두 차례 관광비자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해 본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시절에 대해 내가 놓고 싶지 않은 것이 내게 주어진 기회였는지, 함께한 사람이었는지, 특정한 시대적 흐름이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장소가 주는 효과였는지를 분간하기 위해서는 다소 적극적인 종결 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조언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