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나는 성소수자 군인에게 징역을 선고한 나라에 산다.

결국 군인 신분으로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동성과 성관계를 맺은 육군 A대위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유례 없는 성소수자 탄압 판결인데 진보정권 맞이한 정치권은 축제 분위기라 환멸이 난다.

아시아에서 성소수자의 삶이 본격 정치화되고 있다. 대만은 오늘 오후에 동성혼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의해 동성애자가 태형에 처해졌고 체첸은 성소수자 인권 세계의 체르노빌 사태처럼 되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특수부대가 동성애자들을 잡아간다. 그런데 중국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게이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는 요즘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 영향만 따르면 될 것 같았던 앞길이 탁 막혀버리니 비로소 아시아 주변이 보이는데, 참으로 엉망진창이다.

일본, 홍콩, 대만, 중국, 북한 … 동북아시아의 성소수자들을 연결하기 위한 힘들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아시아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필수 진보적 가치중 하나로 확실히 안착되게 하려면 주류정치, 진보정권에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 ‘괴롭히지 않는’ 진보에 만족하고 타협하면 포퓰리즘에 던져질 일만 남는데, 포퓰리즘은 성향 불문 소수자의 주적이다.

항의와 분노,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내시라. 부탁이 아닌 요구다.

나는 모습을 바꾸었다.

긴 어린이날 연휴 동안 본 블로그를 가꾸고 돌보는 작업을 했다. 대대적인 탈바꿈은 3년 전 이글루스에서 자체 워드프레스로 옮겨온 이후 처음이다. 다음과 같은 변화들이 생겼다:

  • 뭐,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Faraj라고 이름 붙인 세 테마인데 네비게이션 패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지난 번 테마보다 더 뿌리부터 반응형으로 만들었고, 워드프레스 테마 설계하는 실력이 제법 늘어서 조금만 더 잘하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보인다.
  •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온 SSL 인증을 드디어 적용해서 https로 대표 주소가 바뀌었다.
  • 별다른 의미가 없는 글갈래(카테고리) 대신 모든 글을 순서대로 빠르게 훑을 수 있는 ‘모든 글’ 메뉴를 추가했다.
  • 작년 말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는 온·오프라인 한사람-살기 과정의 일환으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링크를 쉽게 닿는 곳에 넣었다.
  • 호스팅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본전 생각이 나서 애드센스 광고를 다시 살렸다.
  • 4년 이상 오래된 글의 인라인 CSS까지 서포트하기 위해 새 테마를 고생시키는 것을 조금씩 덜어내기 위해 일부 호환을 중단했다. 그 결과 오래된 글은 다소 흉칙할 수 있다.
  • 방치돼 있던 캐싱과 이미지 최적화 설정 등을 손보았다. 속에서 바뀐 거야 워낙 많은데 다 얘기하긴 지루해서 이만 줄인다. 그간 클라이언트 작업으로 향상된 워드프레스 개발 관련 잡기나 직장에서 익힌 베스트 프랙티스를 적용했기에 좀 덜 부끄러운 작업이 되었다고 해 둔다.

즐겁게 쓰고 즐겁게 찍고 즐겁게 축적하자. 얼마 전 강연자로 참석했던 행사에서 <눈물의 블로그 10년>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블로그하는 것만큼 ‘쓸만한 사람으로서의 나’에 크게 기여한 습관이 없다. 글을 더하는 속도가 많이 줄었는데도 많이들 와서 읽는 것 같고 정체될 만하면 또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하니 묘한 일이다. 나무테가 이것이다.

나는 세상 피곤한 건 상관없다.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구호를 처음 외치러 나갔던 날에 남대문에 내려서 통제된 세종로 따라 걸어 올라갔다. 촛불을 든 사람 확성기를 든 사람 팻말을 처든 사람들이 점점 빽빽해졌다. 분명 모두들 비슷한 말을 외치고 있었고 나도 함께하러 온 것이었지만 내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시청쯤 다다라서 높다랗게 든 무지개 깃발 주위 한줌의 사람들이 보였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 위원회, 신생 퀴어 페미니스트 유닛들. 그 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그제서어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를 대여섯 번 외치면 한두 번은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하라 외쳤다.

이후 촛불문화제건 시위건 일단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이 모인 곳부터 찾아다녔다. 내가 촛불 속에서 다같이 ‘넘실거리는’ 경험에 취해 우리가 민주주의 만들었다 같은 속편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는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탄핵은 되었지만 박근혜가 밉다고 여자 후려치는 세상은 가지 않았다. 정권교체는 되었지만 보수 기독교 무섭다고 성소수자 내던지는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당선권 밖 후보들 합리적 지지하기에 역사상 가장 좋은 선거였지만 표 저당잡힌 듯 겁박하는 맹목적 팬클럽 지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드 배치 대체로 찬성하고 교육개혁과 4차산업혁명이 국가적 의제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국가주도 일자리창출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정의당이라는 집단을 기본적으로 크게 신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 기간동안 심상정이 아닌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대권주자로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축사하고, 게이들이 합동 제출한 성소수자 대선주자 요구사항에 차별금지법과 군형법상 추행죄 정확히 들어 답변하고, 동성애 반대한다는 토론에서 1분 할애해 기본을 확인시킨 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은 기록되고 축적될 것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정치가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그의 행보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민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선택을 하면 될 일. 내 인권 찾아 표를 움직이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피곤하지만 그야 본디 세상이 피곤하기 때문이니 개의치 않는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일등후보에 웃는다.

나는 지난 대선 때, 초반에는 망설였지만 선거 임박해서는 문재인 펀드에 돈을 넣을 정도로 정권교체 위한 비판적 지지에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마주하면서 그런 태도를 거두기로 결심했고, 최근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의 존재가 이슈화되면서 모든 순간에서, 또 끝까지 싸우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는 자가 되었다. 박원순 시장을 향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호소가 하나의 계기였고,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면서도 성소수자 차별 철폐는 ‘나중에’ 말하자는 문재인 후보가 또 하나의 계기였다. 반면, 나와 국가관도 경제관도 조금씩 다르고 정치공학에 대한 태도도 공감갈 일이 별로 없었던 정의당의 대표 심상정 후보는 최근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관련해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역할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3월에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막 대권 행보를 시작한 그의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겼다.

조금 전,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대권 선두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나중에 듣겠다’에서 한 발짝도 아니고 수십 보 후퇴하여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토론 중에 잘라 말했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곧장 추가 시간을 사용해 가며 이 발언을 비판하고 성소수자 인권 보호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밝혔다. 성소수자 인권은 보호하면 잃을 게 많아서 망설이는 것도 모자라 가장 공개적인 토론 현장에서 ‘반대한다’는 얼토당토한 언어까지 쭉 미끄러져버리는 개탄스러운 수준의 리더에게 맡길 수 없는 문제다. 문재인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 발언에 대해 두고두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죽은 사람이 있다. 바쁜 학생이었던 나를 가르친 그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가장 선생님이 아니었던 사람. 그는 열 일곱의 나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한 학기 동안 시를 가르쳤다. 가르쳤다기보다, 시라는 것이 있으니 한 번 그게 무엇일지 자기가 줄 수 있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우리 나름의 마음을 뒤져서 찾아보라고 권한 것에 가깝다. 허연 교실에서 시를 쓸 순 없다며, 눈이 갓 녹은 초봄부터 해먹이 걸린 풀밭 소나무 그늘로 우리를 내보냈다.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매일같이 시를 쏟아냈다. 쓸 게 없다고 우물쭈물하는 친구 하나 없었다. 그 전까지 우리는 칠십대 영문학 선생님이 강당에서 한 시간 내리 읊어주는 세르반테스 강의를 들으며 조는 데 익숙해 있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턱수염을 기른 이 젊은 남자는 매년 여름마다 음악가 친구들과 함께 캄보디아의 밤바다에서 맥주를 마시고 헤엄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그는 우리와 한 마음이 되어 여름방학을 기다리면서, 우리를 두렵게 하고 답답하게 하고 꼼짝 못하게 하는 생각들을 녹여 각자의 공책에 흐르게 해 주었다.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열 여덟의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이 그가 늘 가던 캄보디아의 그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고 헤엄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이미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천안과 군산에 갔었다.

벌써 몇 주 된 일이 됐다. 목요일에 예비군이 잡혔길래, 금요일에 월차를 써서 긴 주말동안 천안과 군산에 머물렀다. 낯선 사람 두 명을 만나 친해진 것, 간만에 사진을 꽤 찍은 것은 소득. 시외버스와 모텔 신세로 등 근육이 제대로 화가 난 것은 손실. 그러나 소득을 준 부분과 손실을 준 부분을 칼로 자르듯 자를 수는 없다. 그냥 천안과 군산 여행이었다.

천안은 저녁에 출발해도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세종시와 고민하다 택하게 됐다. 천안까지 1호선으로 이동. 천안에서 트위터 친분 하나를 현실 전환했다. 주택을 개조해 커피와 술을 팔고 평일인데 디제이도 하는 곳에서 한 잔 했다. 성정동에서 묵고, 문성동과 신안동을 걸어다녔다. 다음날 군산으로 이동하면서 허니버터 캐슈넛과 대만산 바나나우유 한 잔을 했다. 천안은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군산은 처음이었다.

날씨가 막 풀린 직후였기 때문에, 걷기 애매하다 싶으면 걸었다. 군산에서 잔 모텔은 벽에 칸예 가사가 적혀 있었다. 굳이 택시를 타고 채만식 기념관까지 간 뒤, 거기서 금강 하류를 따라 도심으로 걸어 내려왔다. 웃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웃긴 부분에는 큰 소리로 웃고, 노래는 따라 부르면서 털털 걸었다. 서울에서는 강가를 걷는 걸 많이 안 했던 것 같다. 다른 도시에 살 때엔 일주일에 많으면 두세 번씩 강가 걷기 타임이 있었다. 그러기 편한 도시에 살았던 것도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서도 다른 리듬으로 생활했더라면 얼마든지 한강 둔치를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렇게 써선 안 될 것처럼 되어 있을 뿐이다.




군산 시내는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걸 따라 몇 바퀴 변주를 주며 도는 식으로 구경했다.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 정확히 몇 군데로 딱 정해져 있어서 전반적으로 몹시 한산했다. 낮에는 스테끼동을 잘 하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늦은 밤에는 우유를 손에 들고 단팥빵을 문 채 새만금 벽화가 그려진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9년 전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 알게 되었다. 돈을 모으면서 다음에 노트북을 살지 사진기를 살지 갈등하던 그 느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음에 뭐가 오는지에 대한 답까지는 아직 없지만.



So that it may seem pleasing to you

So that it may seem pleasing to you
My thoughts are filtered for little bits of sand
And scattered over a wide area
Where men and women of the mind pick
And glean and organize into a neat array
That hopefully makes me look like a crazy person
Whose randomest musings and perverse word associations
Are insta ready

So that it may be palatable to you
The story of my life is kneaded and stretched and looped
Over and over again on a stainless pole
Until the whole thing becomes a swirly roll of toffee candy
You know, the kind that’s pretty because it was beaten and contorted until it was
But actually started out pretty ugly
If you ask me

So that it all seems self-deprecating to you
My process is edited and the names redacted
The PR team is divided
The electorate misguided
I steal criticism meant for my neighbors
And play it on my private radio
That has been by any standard pretty public
So is now clear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