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나는 사무실을 옮겼고 팟캐스트에 나왔다.

Design Table
Ep10. 나는 괜스레저렇게 디자인한다

소식 몇 가지가 있다. 소식 하나. 회사가 을지로로 이사를 갔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홍대-상수권을 벗어나 서울타워 보고 일하는 도심으로 옮긴 것이다. 동네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무공간과의 관계도 180도 달라졌다. WeWork에 입주했기 때문이다. 종전 사무실에서는 없는 부엌을 만들어 넣고 화장실 문을 수리하고 겨울엔 창에 뽁뽁이를 붙여가며 일했는데 이제 물리적 환경을 가꾸는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니 업무 몰입도와 집중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8시 넘으면 포차의 빛과 소리(더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 않다) 때문에 내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던 홍대 한복판의 사무실은 그 나름의 아포칼립틱함이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던 터에 이전할 기회를 잘 잡았다.

확실히 장소를 옮기면 시간의 속도도 따라 변한다. 익숙하고 자극에 무뎌진 환경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켕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처럼 미니-도시를 이룬 각양각색의 일 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일하는 환경에서는 하루가 인터벌 트레이닝처럼 장전-발사의 리듬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사라는 물리적 변화라는 계기가 있으니 모두가 스스로의 성장 곡선에 찍을 점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고, 나부터 그렇다.

소식 둘. 「테이블에 모여 앉아 나누는 디자인 이야기」 Design Table 팟캐스트 녹음을 했는데 오늘 올라왔다. 디자이너들에게 내가 어떤 디자인-언저리 사람인지 설명할 때 하는 얘기들을 총동원했는데 김괜저 또는 텀블벅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면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홍수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

일을 성에 차게 하려면 쉴 새 없이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넘쳐 이룬 홍수 속에서 물 속을 헤집고 다니며 가느다란 통제의 끈을 찾아 쥐려고 헤맨다. 끈을 당기면 배수구가 열리고 범람한 물이 빠지겠지. 그러나 비는 계속 오고 있고 물은 점점 탁해진다. 숫자 한 아름을 들고 독방에 들어가 계산기를 몇 일 동안 두드리면 답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게 몇 일을 보내고 나오면 지형 자체가 바뀌어 있다. 범람하는 자극원들로부터 혼돈을 걷어내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고 발산해야 한다. 하지만 홍수를 지팡이로 휘저어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새 구역을 찾아서 뭍을 만들고, 몸에는 날개를 틔워야 한다.

나는 상해에 무사히 닿았다.

작년에 비자 없어 공항에서 포기했던 상하이 여행. 재시도는 성공이다. 아 민망해.



가족과 베이징을 여행한 것이 거의 15년 전이었으니 그간 중국 본토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 바 없이 지냈다는 얘기가 된다. 나 같은 사람에게 중국과 안면을 틀 첫 장소가 상하이인 것은 너무 당연한 부분이고… 맑은 날 밤에 홍차오로 비행기가 내리는데 상공에서 본 상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도시였다. 구획이 다르고 비율이 다르고 무엇보다 도로가 어둡고 LED 선전등만 색색으로 밝은 것이 무척 낯설었다. 언어가 말도 글도 안 되니 도움이 절실한 신세인데 물론 나의 모험동반자 해리가 그 역할을 또 해주었다. 상해어 섞인 북경어가 홍콩 사람에게는 꽤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해리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보고 당커우라는 역사 깊은 외곽 마을도 가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여행도 일하듯 하는 인간이라, 노트북에 카메라를 다 지고 다니면서 하루에 사진 이삼백 장을 찍고 밤에는 그걸 다 보정한 다음에야 잠에 들곤 한다. 게다가 요즘은 어딜 가든 일 생각을 가지고 다닌다. 상하이역에서 해리에게 짐을 맡겨 놓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펜과 노트를 사러 역을 헤집고 다녀 표지에 아이 러브 상하이라고 적힌 말도 안 되는 수첩을 사서야 기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 속 여행인 당커우 가는 기차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니, 대도시의 위용이 2차 1차 산업의 풍경으로 슥슥 타임랩스하는 광경이 머리에서 일 생각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을 느꼈다. 공간만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까지 여행해 당대성을 삭제해야 비로소 일 생각에 연결된 고리들이 충분히 끊어지고 여행이 여행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 군인에게 징역을 선고한 나라에 산다.

결국 군인 신분으로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동성과 성관계를 맺은 육군 A대위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유례 없는 성소수자 탄압 판결인데 진보정권 맞이한 정치권은 축제 분위기라 환멸이 난다.

아시아에서 성소수자의 삶이 본격 정치화되고 있다. 대만은 오늘 오후에 동성혼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의해 동성애자가 태형에 처해졌고 체첸은 성소수자 인권 세계의 체르노빌 사태처럼 되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특수부대가 동성애자들을 잡아간다. 그런데 중국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게이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는 요즘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 영향만 따르면 될 것 같았던 앞길이 탁 막혀버리니 비로소 아시아 주변이 보이는데, 참으로 엉망진창이다.

일본, 홍콩, 대만, 중국, 북한 … 동북아시아의 성소수자들을 연결하기 위한 힘들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아시아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필수 진보적 가치중 하나로 확실히 안착되게 하려면 주류정치, 진보정권에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 ‘괴롭히지 않는’ 진보에 만족하고 타협하면 포퓰리즘에 던져질 일만 남는데, 포퓰리즘은 성향 불문 소수자의 주적이다.

항의와 분노,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내시라. 부탁이 아닌 요구다.

나는 모습을 바꾸었다.

긴 어린이날 연휴 동안 본 블로그를 가꾸고 돌보는 작업을 했다. 대대적인 탈바꿈은 3년 전 이글루스에서 자체 워드프레스로 옮겨온 이후 처음이다. 다음과 같은 변화들이 생겼다:

  • 뭐,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Faraj라고 이름 붙인 세 테마인데 네비게이션 패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지난 번 테마보다 더 뿌리부터 반응형으로 만들었고, 워드프레스 테마 설계하는 실력이 제법 늘어서 조금만 더 잘하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보인다.
  •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온 SSL 인증을 드디어 적용해서 https로 대표 주소가 바뀌었다.
  • 별다른 의미가 없는 글갈래(카테고리) 대신 모든 글을 순서대로 빠르게 훑을 수 있는 ‘모든 글’ 메뉴를 추가했다.
  • 작년 말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는 온·오프라인 한사람-살기 과정의 일환으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링크를 쉽게 닿는 곳에 넣었다.
  • 호스팅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본전 생각이 나서 애드센스 광고를 다시 살렸다.
  • 4년 이상 오래된 글의 인라인 CSS까지 서포트하기 위해 새 테마를 고생시키는 것을 조금씩 덜어내기 위해 일부 호환을 중단했다. 그 결과 오래된 글은 다소 흉칙할 수 있다.
  • 방치돼 있던 캐싱과 이미지 최적화 설정 등을 손보았다. 속에서 바뀐 거야 워낙 많은데 다 얘기하긴 지루해서 이만 줄인다. 그간 클라이언트 작업으로 향상된 워드프레스 개발 관련 잡기나 직장에서 익힌 베스트 프랙티스를 적용했기에 좀 덜 부끄러운 작업이 되었다고 해 둔다.

즐겁게 쓰고 즐겁게 찍고 즐겁게 축적하자. 얼마 전 강연자로 참석했던 행사에서 <눈물의 블로그 10년>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블로그하는 것만큼 ‘쓸만한 사람으로서의 나’에 크게 기여한 습관이 없다. 글을 더하는 속도가 많이 줄었는데도 많이들 와서 읽는 것 같고 정체될 만하면 또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하니 묘한 일이다. 나무테가 이것이다.

나는 세상 피곤한 건 상관없다.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구호를 처음 외치러 나갔던 날에 남대문에 내려서 통제된 세종로 따라 걸어 올라갔다. 촛불을 든 사람 확성기를 든 사람 팻말을 처든 사람들이 점점 빽빽해졌다. 분명 모두들 비슷한 말을 외치고 있었고 나도 함께하러 온 것이었지만 내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시청쯤 다다라서 높다랗게 든 무지개 깃발 주위 한줌의 사람들이 보였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 위원회, 신생 퀴어 페미니스트 유닛들. 그 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그제서어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를 대여섯 번 외치면 한두 번은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하라 외쳤다.

이후 촛불문화제건 시위건 일단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이 모인 곳부터 찾아다녔다. 내가 촛불 속에서 다같이 ‘넘실거리는’ 경험에 취해 우리가 민주주의 만들었다 같은 속편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는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탄핵은 되었지만 박근혜가 밉다고 여자 후려치는 세상은 가지 않았다. 정권교체는 되었지만 보수 기독교 무섭다고 성소수자 내던지는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당선권 밖 후보들 합리적 지지하기에 역사상 가장 좋은 선거였지만 표 저당잡힌 듯 겁박하는 맹목적 팬클럽 지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드 배치 대체로 찬성하고 교육개혁과 4차산업혁명이 국가적 의제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국가주도 일자리창출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정의당이라는 집단을 기본적으로 크게 신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 기간동안 심상정이 아닌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대권주자로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축사하고, 게이들이 합동 제출한 성소수자 대선주자 요구사항에 차별금지법과 군형법상 추행죄 정확히 들어 답변하고, 동성애 반대한다는 토론에서 1분 할애해 기본을 확인시킨 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은 기록되고 축적될 것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정치가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그의 행보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민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선택을 하면 될 일. 내 인권 찾아 표를 움직이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피곤하지만 그야 본디 세상이 피곤하기 때문이니 개의치 않는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일등후보에 웃는다.

나는 지난 대선 때, 초반에는 망설였지만 선거 임박해서는 문재인 펀드에 돈을 넣을 정도로 정권교체 위한 비판적 지지에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마주하면서 그런 태도를 거두기로 결심했고, 최근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의 존재가 이슈화되면서 모든 순간에서, 또 끝까지 싸우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는 자가 되었다. 박원순 시장을 향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호소가 하나의 계기였고,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면서도 성소수자 차별 철폐는 ‘나중에’ 말하자는 문재인 후보가 또 하나의 계기였다. 반면, 나와 국가관도 경제관도 조금씩 다르고 정치공학에 대한 태도도 공감갈 일이 별로 없었던 정의당의 대표 심상정 후보는 최근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관련해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역할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3월에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막 대권 행보를 시작한 그의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겼다.

조금 전,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대권 선두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나중에 듣겠다’에서 한 발짝도 아니고 수십 보 후퇴하여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토론 중에 잘라 말했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곧장 추가 시간을 사용해 가며 이 발언을 비판하고 성소수자 인권 보호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밝혔다. 성소수자 인권은 보호하면 잃을 게 많아서 망설이는 것도 모자라 가장 공개적인 토론 현장에서 ‘반대한다’는 얼토당토한 언어까지 쭉 미끄러져버리는 개탄스러운 수준의 리더에게 맡길 수 없는 문제다. 문재인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 발언에 대해 두고두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